주절주절주절주절. :: 2008/04/18 20:17
한 두사람씩 퇴근하고 다시금 사무실엔 적막이 흐른다.
이 적막함이란게 어떤날은 정말 좋았다가도, 어떤날은 괜한 투정으로 바뀌기 일쑤인데,
그래도 오늘은 세사람이 단촐이 앉아 일하고 있으니 그 울컥한 마음은 조금 덜 하다.
연봉을 협상하는 시즌이 오면 괜시리 마음이 울렁댄다.
그리고 꼭 그런 시기가 오면 여기저기에 오라는 소리도 많이 들리고,
또 얄궂게도, '너 정도면 연봉이 엄청 뛸꺼다'라는 용기 북돋음에 귀가 얇아져,
앞뒤 안가리고 막무가내로 욕심이 커져만 간다.
오늘도 그런 듯.
협상이라는 것이 늘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협상을 잘하는 사람들의 말은 토시 하나도 빼놓지 말고잘 귀기울여야 한다.
최대한 내 생각은 배제하되, 저사람이 무슨 의도로 말을 꺼낸건지 조금은 한발 앞설줄도 알아야 하고.
그런데- 나는 늘 너무 앞서가는게 문제긴 하다.
성격이 급한게 꼭 누구누구를 닮았는데, 오늘도 여지 없이 그랬다.
흔히들 연봉 협상 수준을 기존 연봉에 %로 계산하는데
나는 워낙에 숫자 개념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렇게 몇프로 몇프로 따져 묻는게 어색하다.
걍 에누리 없이 딱잘라 '얼마' 맞춰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늘 그렇게 되물었고,
내가 먼저 제시한 금액에 '이거 뭐야'하는 사람 반 '옳거니'하는 사람 반이었던 것 같다.
연봉이 깎이게 되건 오르게 되건, 동결이 되건 간에,
그 숨막히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무조건 쉽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는 스타일이다.
어찌됐건 그 결정의 순간이란게 그때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니까,
그만둘 각오로 협상선을 올리던지, 아님 그 기준에 마음을 반쯤 접고 포기해야 하니까.
괜히 구차하게 '아씨..나 더 주지, 나 더 받을 수 있는데, 더 받아야 하는데' 식으로,
어물어물 거리다가, 내 나머지 날들을 망쳐버리기 일쑤니 말이다.
그런데 협상을 하면서 오늘 든 생각은,
그 협상의 기준이 '과거' 이냐 '미래'이냐 하는 것의 관점차가 심각하다는 거다.
협상자들은 분명 '넌 한일이 이것 뿐이니 요만큼만 올려주겠다'라고 분명 깍아내리는 것이고,
나는 '내년엔 좀 더 분발해볼테니 맘상하지 않게 주십쇼'라고 몇백원이라도 더 받고 싶은 것이고,
둘다 틀린 말은 아니고- 반반 섞어야 맞는건 알겠는데,
나도 아직 하참 밑바닥 인생이라 후자쪽에 더 애착이 간다는 말씀이다.
어찌되었건 내 연봉을 책정하려 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이 사람의 과거 업무 능력과 성과율을 판단함과 동시에, '당근'으로 쓰일 수 있는 '미래투자'가치를
체크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 물론 당근 다 먹고 나면 도망치는게 습성이지만서도.
굳이 열심히 하고자 마음 먹는 사람에게, 기를 누를 필요는 없는거지.
협상이 결렬되면 그 뿐이다.
내가 그랬다는건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안그랬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야기를 하는 내내 나는 좀 시큰둥했다. 그도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만서도.
과거에 집착하는 상대방을 보고 있자니, 돈을 떠나 내년을 계획했던 내 모습들이 좀 우스워진거다.
내가 좀 갸우뚱하면서 심상해보이자, 상대방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격하게 반응했다.
그냥 단지, 두사람의 대화에 제3자가 껴있지 않는 한,
적어도 말할땐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정도는 예상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생각.
아니면 오히려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부러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여우가 되는게 아니라,
점점 겁대가리만 상실하는 것 같다.
이리저리 살랑방구를 끼며 돈을 올려받아도 모자랄 판국에, 결국 내뱉었다.
'뜻은 알겠는데, 듣기에 썩 기분좋진 않네요. 협상 안되서 퇴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까.'
아.. 스물 다섯살때는 '미친듯이 열심히 하고 여기서 뼈를 묻겠습니다'라고 했던것 같기도 한데..
아닌가.. 흠.. 잘 생각이 안난다.
금요일. 밤. 주절주절주절. 마을버스 타고 가야지.